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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지치(會稽之恥)

등록일: 2026-05-15 조회: 3

會 모일 회
稽 상고할 계
之 갈 지
恥 부끄러울 치

‘회계산(會稽山)에서의 수치(羞恥)’라는 뜻으로, 전쟁(戰爭)에 패(敗)한 치욕(恥辱)을 이르는 말. 중국(中國)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후이지산(會稽山)에서 패전(敗戰)하고 생포(生捕)되어 굴욕적(屈辱的)인 강화(講和)를 맺었다는 데서 유래(由來)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월나라(越--) 왕(王) 구천(句踐ㆍ勾踐)과 싸워 크게 패한 오나라(吳--) 왕(王) 합려(闔閭)는 적(敵)의 화살에 부상(負傷)한 손가락의 상처(傷處)가 악화(惡化)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임종(臨終) 때 합려(闔閭)는 태자(太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句踐ㆍ勾踐)을 쳐서 원수(怨讎)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 오나라(吳--) 왕(王)이 된 부차(夫差)는 부왕(父王)의 유명(遺命)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자기 방(房)을 드나드는 신하(臣下)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父王)의 유명(遺命)을 외치게 했다. “부차(夫差)야, 월왕(越王) 구천(句踐ㆍ勾踐)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復讎)를 맹세(盟誓)한 부차(夫差)는 은밀히 군사(軍士)를 훈련(訓鍊ㆍ訓練)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事實)을 안 월나라(越--) 왕(王) 구천(句踐ㆍ勾踐)은 참모(參謀)인 범려(范蠡)가 간(諫)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先制) 공격(攻擊)을 감행(敢行)했다. 그러나 월나라(越--) 군사(軍士)는 복수심(復讎心)에 불타는 오나라(吳--) 군사(軍士)에 대패(大敗)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逃亡)갔다. 오나라(吳--) 군사(軍士)가 포위(包圍)하자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진 구천(句踐ㆍ勾踐)은 범려(范蠡)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吳--)의 재상(宰相) 백비(伯嚭)에게 많은 뇌물(賂物)을 준 뒤 부차(夫差)에게 신하(臣下)가 되겠다며 항복(降伏ㆍ降服)을 청원(請願)했다. 이때 오나라(吳--)의 중신(重臣) 오자서(伍子胥)가 “후환(後患)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句踐ㆍ勾踐)을 쳐야 한다.”고 간(諫)했으나 부차(夫差)는 백비(伯嚭)의 진언(盡言)에 따라 구천(句踐ㆍ勾踐)의 청원(請願)을 받아들이고 귀국(歸國)까지 허락(許諾)했다. 구천(句踐ㆍ勾踐)은 오나라(吳--)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故國)으로 돌아오자 항상(恒常) 곁에다 쓸개를 놔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 회계산(會稽山)의 치욕(恥辱)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夫婦)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農軍)이 되어 은밀(隱密)히 군사(軍士)를 훈련(訓鍊ㆍ訓練)하며 복수(復讎)의 기회(機會)를 노렸다. 이로부터 20년이 흐른 뒷날 월나라(越--) 왕(王) 구천(句踐ㆍ勾踐)이 오나라(吳--)를 쳐 이겨, 오나라(吳--) 왕(王) 부차(夫差)를 굴복(屈服)시키고 마침내 회계산(會稽山)의 굴욕(屈辱)을 씻었다. 부차(夫差)는 용동에서 여생(餘生)을 보내라는 구천(句踐ㆍ勾踐)의 호의(好意)를 사양(辭讓)하고 자결(自決)했다. 그 후 구천(句踐ㆍ勾踐)은 부차(夫差)를 대신(代身)하여 천하(天下)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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