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AK CMAK

HOME 알림마당 CM을 부탁해

CM을 부탁해

이판사판[ 理判事判 ]

등록일: 2025-05-09 조회: 3


요약 우리나라 불교에서 역할 분담에 따라 승려를 구별하여 부른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현재 이판사판은 어찌할 수 없이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을 가리켜 쓰인다.
理 : 다스릴 리(이)
判 : 구별할 판
事 : 일 사
判 : 구별할 판


불교 용어인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합쳐진 말이다. 대한제국 말기 국학자 이능화(李能和, 1869~1943)가 1918년에 쓴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권 〈이판사판사찰내정(理判事判寺刹內情)〉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조선의 사찰 내에는 이판승(理判僧)과 사판승(事判僧)을 구별하는 명칭이 있다. 이판(理判)은 대개 참선하고 경전을 강론하고 수행하고 포교[弘法]하는 승려들을 일컫는다. 세속에서는 소위 공부승(工夫僧)이라고도 한다. 사판(事判)은 재산을 운영하고 사업을 하는 등의 사무 처리에 힘쓰는 승려이다. 세속에서는 이른바 산림승(山林僧)이라고도 하는데, 산림이라는 것은 곧 일체의 산업·사무를 주관하는 것을 말한다. 이판과 사판은 그 어느 한쪽이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이판승이 아니면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없고, 사판승이 아니면 가람을 보호·유지할 수 없다. 옛날로 말하면 청허(淸虛)·부휴(浮休)·벽암(碧巖)·백곡(百谷) 등의 여러 대사들이 이판과 사판을 겸했다. …(중략)… 약휴(若休) 화상(和尙)은 사판승으로서 선암사를 잘 수호하였고, 우은(愚隱) 화상도 사판승으로서 유점사의 중창을 능히 이루어 냈다. 이 두 화상 같은 분들은 이(理)와 사(事) 모두에 융통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판과 사판은 사찰 내에서 승려들의 업무 분담에 따른 구별을 위해 사용된 말이다. 각각의 업무만 주관하는 승려들도 있었지만, 이판승이라고 해서 이판만 하고 사판승이라고 해서 사판만 맡은 엄격한 체계는 아니었다. 예시된 여러 고승들처럼 두 가지를 겸하여 능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두 단어의 원래 의미와는 달리 합성어인 이판사판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 말은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 원하는 방향은 전혀 아니지만 어떻게든 해결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을 가리킨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만큼 끝장에 이른 처지, 일이 아무렇게나 마구 되어 버린 판국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된 정확한 유래가 문헌상으로 전해지는 바는 없지만, 대개 다음과 같은 시대적 배경과 결부하여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전 국가적으로 융성했던 반면 고려 말기부터 배불론(排佛論)이 대두되고 조선조에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비판하고 금지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태종 때에는 전국에 242개 사찰 외에 나머지 사찰은 폐사시키고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였고, 승려 신분 공인 제도인 도첩제(度牒制)를 엄격히 시행하였다. 여러 종파들을 강제로 선종과 교종 두 개 종파로 통폐합시켰고(1424년, 세종 6년), 부모를 만나거나 물건을 매매하러 온 경우 외에는 승려의 도성 출입을 제한하였다(1449년, 세종 31). 16세기 중종 때에는 법전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을 간행하면서 승려의 도성 출입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공식적으로 명시하기까지 하였다. 조선 후기 잦은 전란에 승려를 군인으로 동원하는 등 공무로 인한 출입은 허가하기는 했지만, 1785년(정조 9)에 편찬된 《대전통편(大典通編)》에서 공사(公私)를 불문하고 승려가 도성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할 정도로 다시 강화되었다. 승려들이 공식적으로 도성 출입이 허가된 것은 백 년도 더 지난 1895년(고종 32)이었다.

이처럼 국가적·사회적으로 불교를 탄압하고 승려들을 천시하는 분위기에서 승려 신분인 것, 이판승이고 사판승인 승려가 된다는 것 자체를 끝장, 한없이 추락한 상태에 비유하는 말이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 또는 승려가 될 때 이판승이 되든 사판승이 되든 선택해야 하는데 이판승과 사판승 간의 깊은 갈등이 있어 그 기로에서 이판이든 사판이든 관계없다,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말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시대 배경과 연관하여 추정한, 두 단어의 원래 의미를 무리하여 곡해한 해석일 뿐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판과 사판 자체의 본뜻과 이판사판이라는 합성어의 어원을 혼동하여 견강부회(牽强附會)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음글 오월걸상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