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가 종기를 빨았다는 뜻으로, 사졸을 위하는 장수의 정성어린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吳 : 오나라 오
起 : 일어날 기
吮 : 빨 연
疽 : 등창 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나라 출신의 장군, 정치가인 오기와 관련한 성어이다. 노(魯)나라, 위(魏)나라, 초(楚)나라에서 활약하였으며, 병가(兵家)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저작으로 《오자병법(吳子兵法)》이 세상에 전하여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손자와 함께 병칭된다. 오기에 관해서는 《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자세하다.
기원전 412년 제선공(齊宣公)이 노나라를 공격해오자 노나라 목공(穆公)이 오기를 장수로 삼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어서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오기는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아내를 직접 죽이고는 제나라를 향한 마음이 없음을 보였다. 그렇게 장군에 임명된 오기는 제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후에 누군가 오기가 자신을 비방한 자들 30여 명을 죽이고 달아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며 그의 잔인함과 불효에 대해 목공에게 일러바쳤다. 그 얘기를 들은 목공은 더 이상 오기를 신임하지 못하고 파직시켰다. 오기는 그 길로 위나라 문후(文侯)를 찾아가고자 했다. 문후가 그 소문을 듣고 신하 이극(李克)에게 오기의 사람됨을 묻자, 이극은 오기가 탐욕스럽지만 용병술(用兵術)만큼은 뛰어나다고 고했다. 위문후는 결국 오기를 장군으로 삼았고 진(秦)나라의 성 다섯 곳을 함락시켰다.
오기는 위나라에 30년 가까이 있으면서 수많은 승리를 이끌고 사방으로 상당한 지역을 개척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위나라에서 세운 업적 외에도 실제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군사 이론으로 중국 역사에서 역대 명장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가 병법에서 강조한 한 가지가 병사를 아껴 군대 내부의 단합을 높이는 것이다. 다음의 고사가 그러한 한 예이다.
오기는 장군이었지만 사졸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자들과 함께 입고 마셨다. 잘 때도 이불을 깔지 않고 행군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았다. 직접 식량을 지고 다니며 사졸들과 노고를 함께 하였다. 병졸 중에 종기로 병이 난 자가 있었는데 오기가 그것을 입으로 빨아주었다.[卒有病疽者, 起爲吮之.] 병졸의 어머니가 그 얘기를 듣고 통곡하였다. 누군가 “아들이 일개 졸병인데 장군이 직접 종기를 입으로 빨아 주었다고 하지 않소. 왜 우는 것이오?” 하니 병졸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오공께서 그 아이 아비의 종기를 빨아 주었는데 그 아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적진에 나아가 싸우다 죽었습니다. 오공이 이번에 또 그 아들의 종기를 빨아주었으니 아이가 또 어디서 죽을지 몰라 이렇게 우는 것입니다.”
아비에 이어 아들까지 이어질 정도로 오기는 늘 사졸을 일일이 살폈던 장군이었고, 그런 오기를 위해 병사들은 목숨을 바쳐 싸웠다는 고사이다. 오기는 군대를 통솔하는 대장군의 자리에 있었지만 하급 사졸들과 동고동락하며 의리를 지키고 전장의 사기를 높였다.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병사를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알고 그의 장점을 살려주어야 한다.
여기서 전하여 오기연저라는 말이 있다. 사졸을 아낄 줄 아는 대장의 사랑 어린 행동을 가리킨다. 연저지인(吮疽之仁)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한편 종기를 빨아주었다는 ‘연저(吮疽)’와 관련해서는 《사기》 〈영행열전(佞幸列傳》)〉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한(漢)나라 때 인물 등통(鄧通)과 관련한 일화로, 한문제(漢文帝)가 종기를 앓은 적이 있는데 등통이 늘 황제를 위해서 고름을 빨아내 주었다. 등통은 별다른 재능은 없었으나 황제의 비위만 맞추며 아첨하여 총애를 받았다. 여기서 연저지치(吮疽舐痔)라는 말이 전한다. 연저지치는 오기연저와 다르게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험하고 궂은일도 마다하는 간신배와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