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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읍성

등록일: 2025-07-21 조회: 2


조선 초기 세종 연간(1438년~1450년 경) 금강 하구를 통해 충청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으려고 돌로 쌓은 성이다. 특히 성의 성벽은 1645m 규모의 연해읍성(沿海邑城)으로는 드물게 자연 지세를 활용해 산지(山地)에 축성된 것이 특징이다.

조선 초기 세종 연간(1438년~1450년 경) 금강 하구를 통해 충청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돌로 쌓은 1,645m 규모의 연해읍성(沿海邑城)으로, 충청남도 서천군에 위치하고 있다. 연해읍성은  조선 초기(주로 세종)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고 지방행정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해안 요충지에 축조한 읍성을 말한다.

"서천읍성"은 연해읍성으로는 드물게 자연 지세를 활용하여 산지(山地)에 축성됐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조선읍성 훼철령(1910년)’으로 전국의 읍성이 철거되는 수난 속에서 성 내부의 공해시설(公廨施設, 행정·군사 등의 공무수행에 필요한 시설)은 훼손되었으나, 남문지 주변 등 일부를 제외한 성벽은 대부분이 잘 남아있다. 아울러 1438년(세종 20년)에 반포된 <축성신도(築城新圖)>에 따른 ‘계단식 내벽’과, 1443년(세종25년) 이보흠(李甫欽)이 건의한 한양도성의 ‘수직 내벽’ 축조기법이 동시에 확인되는 등 조선 초기 축성정책의 변천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도 높다.

이 밖에 1451년(문종 1년) <문종실록>에 성터가 높고 험하여 해자를 파기 어렵다는 기록이 있어,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자를 비롯하여 방어용으로 추정되는 1.5~2m 간격의 수혈유구가 확인되는 등 조선 초기의 연해읍성 축성 구조와 변화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는 가치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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