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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지(塗貌紙)

등록일: 2026-01-14 조회: 5

조선시대 때 공적기관이 아닌 사적으로 행해지던 형벌 중 하나로 전해지는 것으로, 한지를 물에 묻혀 얼굴에 몇 겹으로 올려 놓은 뒤 종이의 물기가 말라가면서 점점 숨이 막히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도모지(塗貌紙)는 조선시대 때 공적기관이 아닌 사적으로 행해지던 형벌 중 하나로 전해지는 것으로, 한지를 물에 묻혀 얼굴에 몇 겹으로 올려 놓은 뒤 종이의 물기가 말라가면서 점점 숨이 막히도록 한 것이었다. 이 도모지 형벌을 받는 사람은 눈과 코, 입이 모두 가려진 상태에서 서서히 숨을 쉬지 못하게 되다가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구한말 애국지사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는 집안의 인륜을 어긴 죄를 지은 자식을 부모가 눈물을 머금고 남몰래 죽이는 사형(私刑)을 "도모지"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때 도모지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는데, 대표적으로 1860년 대규모 천주교탄압(경신박해) 당시 도모지 처형 기록이 있다.

힌편, 우리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도무지"라는 단어는 "아무리 하여도" 또는 "이러하고 저러하고 할 것 없이"라는 뜻을 가진 부사로, 이는 "도모지"에서 유래된 것이다. "도무지"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뜻으로, "아무리 궁리해 봐도 도무지 방법이 없어" 등으로 사용된다.  또 "뜻에 맞지 않고 불만스러울 때 혼자 욕으로 하는 말"이라는 뜻의 "젠장"이라는 말도 형벌에서 유래된 것인데, "젠장"은 "제기, 난장 맞을!"이 줄어든 말이다. 여기서 난장(亂杖)이란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마구 매로 치던 조선시대의 형벌이었다. 그러나 이는 영조 46년(1770년)에 불로 지지는 형벌인 "낙형(烙刑)"과 함께 중지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의 형벌, 오형제도(五刑制度)
조선시대 때 형벌은 중국 명나라의 율령(明律)을 기본으로 하여 제정된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등을 근거로 운영됐다. 이는 태형(笞刑)·장형(杖刑)·도형(徒刑)·유형(流刑)·사형(死刑) 등의 다섯 가지로 구분되는데, 태형과 장형은 죄인의 엉덩이나 등을 곤장으로 치는 형벌이었다. 도형은 태형·장형보다 무거운 노역형으로 일정 기간 관청의 노비처럼 부역을 시키는 형벌이었고, 유형은 정치적 죄인을 먼 지역에 유배 보내는 형벌이었다.
그리고 가장 무거운 처벌인 사형의 경우 교형(교수형)·참형(참수형)·능지처참·효수 등이 행해졌는데, 이 가운데 능지처참의 경우 매우 중한 반역죄나 대역부도죄에 적용된 잔인한 형벌이었다. 다만 능치처참형이라는 용어가 조선시대 기록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시행된 적은 드문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거열형(오체분시)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능지처참형이 너무 잔인해 상징적으로만 사용된 데 따른 것이다. 거열형은 사지에 밧줄을 묶고 말이나 소가 끄는 방식으로 사지를 절단하는 형벌을 말한다.
한편, 조선시대 때 사형 같은 중형은 한 번의 판결로 확정되지 않고, 세 번 심사하여 억울한 일이 없도록 했다. 하지만 그 형벌은 신분에 따라 그 정도가 달리 적용됐는데, 양반은 장형 이상을 받는 일이 드물었고 대신 유배형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상민이나 노비는 태형이나 장형을 자주 받았는데, 특히 장형은 실질적으로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로 가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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