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메리카 파나마지협을 횡단하여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잇는 운하로, 카리브해 크리스토발(發) 항구에서 태평양의 발보아 항구에 이르는 수로이다. 1904~1914년의 공사로 개통됐는데, 초기에는 미국이 운영했다가 미국이 1999년 7월 철수하면서 파나마 정부로 운영권이 완전 이양된 바 있다.
"파나마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약 82km 길이의 인공 수로로, 1904년∼1914년의 공사로 개통 됐다. 카리브해 크리스토발(發) 항구에서 태평양의 발보아 항구에 이르는 수로로, 초기에는 미국이 운영했다가 미국이 1999년 7월 철수하면서 파나마 정부로 운영권이 완전 이양된 바 있다.
운하 건설은 왜?
미국은 1898년 에스파냐와의 전쟁으로 필리핀과 괌을 획득하고 하와이를 합병하는 등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으로의 진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출을 위해서는 미국 동부 해안에서 중미 지협을 횡단하여 태평양으로 나가기 위한 항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운하 건설을 구상한 미국은 1903년 파나마 지역 운하지대의 사용권을 얻는 조건으로 일시금 1000만 달러에 연 25만 달러를 지불하는 계약을 콜롬비아와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 협정은 콜롬비아 의회로부터 "너무 적은" 금액이란 이유로 비준을 거부당했다. 이후 미국은 콜롬비아로부터의 분리 열망이 강했던 파나마의 독립을 도와주는 대신 운하의 건설, 운영, 운하지대의 치외법권 등을 명시한 운하조약을 체결해 운하 독점사용권을 얻었다.
운하 개통과 운영권 이양
그리고 1904년∼1914년의 공사로 운하가 개통되면서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남아메리카 태평양 지역으로의 진출이 용이해졌다. 그러나 운하에서 얻는 막대한 통행세를 미국이 차지하고 운하지대에서의 파나마인 차별이 계속되면서 파나마인들의 불만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64년 운하지대에서 파나마 국기 게양을 둘러싸고 일어난 분쟁이 계기가 되어 폭동이 발생, 운하지대의 주권 반환에 대한 파나마인의 요구가 높아졌다.
그리고 이러한 파나마 측의 요구를 여러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지지하게 되자 미국은 결국 양보를 결정하였다. 이에 1977년 9월 파나마 정부와 2000년에 운하를 반환하기로 하는 새 운하조약을 체결하고 이듬해 4월 비준하였다. 이에 1911년 이후 "파나마 운하작전"이란 이름과 함께 이곳에 주둔, 관할해 온 미 남부사령부는 약 1세기 만인 1999년 7월 30일 공식적으로 파나마운하 작전을 종료했다. 미 남부군(USARSO)은 파나마시티 남쪽 5km 지점의 포트 클레이턴에서 공식 철수했으며, 파나마 운하 운영권은 미국에서 파나마정부로 완전 이양됐다.
운하의 효과
파나마 정부는 이후 매년 100억 달러씩 운하 이용수익을 거두었으나, 물동량이 늘면서 기존 운하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2006년 국민투표(77.8% 찬성)를 통해 운하 확장공사를 결정했다. 이후 9년간 약 53억 달러를 투자해 운하 확장 공사를 진행해 2016년 6월 26일 확장 개통했다. 기존 파나마 운하는 ▷길이 304.8m, 폭 33.5m, 깊이 12.8m였지만 새 파나마 운하는 ▷길이 427m, 폭 55m, 깊이 18.3m이다. 또 확장 개통 전까지는 폭 32m, 길이 295m의 파나막스급 선박까지만 이용이 가능했지만 확장 개통으로 폭 49m, 길이 366m의 포스트 파나막스급 선박도 이용이 가능해졌다. 현재 파나마 운하에는 연간 약 1만 4000척의 선박이 통과하는데, 이는 세계 해상 무역량의 약 6%를 차지한다.